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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개국공신 전이갑(全以甲)

송계 2007. 4. 15. 10:59
고려개국공신 전 이 갑
 

전공(全公)은 휘(諱)는 이갑(以甲)이요. 자는 자경(子經), 장호(腸號)는 도원(挑源)으로 정선사람이다. 정선전씨 중시조 정선군(中始祖 旌善郡) 휘선(諱宣)의 7세손 휘우상(諱禹相)의 아들로 태어났다. 公이 태어날 때 그 어머니 꿈에 푸른 옷을 입은 세 노인이 한 아이를 안 고와 주면서 『"이 아이는 장차 명예와 공(功)이 한나라에 충만하리니 잘 보호하여 키우라."』는 이야기를 하고 사라졌다. 그후 태기가 있어 公이 출생하였는데 태어날 때 온 집안에서 서기(瑞氣)가 충만하여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으며, 公이 자라면서 부터는 용모가 빼어나고 智勇이 絶倫하여 文詞에도 通達하시었다.

公의 동생 의갑(義甲) 또한 그 어머니가 기이한 꿈을 꾸고 낳았으며 훌륭히 자라니 그때의 사람들이 두 영웅(英雄)이라고 칭찬하였다.

公의 벼슬이 기랑(騎郞)이 되었을 때 왕건(高麗太祖)을 만나니 王建이 그 임물됨을 알아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는 세상의 英雄 이라 三秀의 蒼生들이크게 救濟하기를 期待한다〕고 하였다.

그후 王建을 王으로 모시고 高麗를 세우니 戊牛年에 楊洲를 정벌하여 평정하고 庚申年에 廣靑州등지를 정벌하여 적을 전멸하고, 丙寅年에 견훤을 尙州 에서 몰아 내고 그 땅을 개척하였으며 丁卯年에 또 견훤을 羅州에서 大破하여 陳을 설치하고 돌아오니 그때에 太祖(王建)의 이름이 크게 떨치어 조정과 백성이 모두 그를 따르게 되었다.

太祖3년에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므로 신라의 使臣 金律이 와서 도와줄 것을 간청하여 太祖가 公 申崇謙에 命하여 精騎將軍을 삼아 가서 救媛케하니 견훤이 그 소문을 듣고 싸우지도 않고 退却하였다.

이때 公이 申崇謙에게 이르기를 견훤이 强暴해서 항상 변방의 우환꺼리가 되니 이 기회에 그를 전멸시킴이 좋겠다 하고 그를 끝까지 쫓아 추격하니 그의 군사는 거의 전멸하고 견훤만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쳤다.

太祖8년에 公으로 하여금 太師를 삼았으며 太祖10年에 다시 견훤과 達成 팔공산 오동나무 숲에서 격전하다가 드디어 敗하여 궁지에 몰리었다.

견훤이 포위하고 맹공을 가하므로 사태가 위급한지라 太祖와 옷을 바꾸어 입어 王을 탈출시키고 公은 동생 義甲, 사촌동생 樂과 더불어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후 太祖가 크게 슬퍼하시며, 公에게 旌善郡 封號와 시호(諡號)를 忠烈이라 내리시고, 公의 동생 義甲에게는 竹山君 封號와 諡號 忠康을 사촌동생 樂에게는 天安君 封號와 諡號 忠達을 내리시고 후손(後孫)에게는 조세와 각종 국가의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이 삼충공(三忠公)의 忠行을 기리기 위하여 그 후손들이 1933年 동면 석곡 2리에 삼충사(三忠詞)라는 제당(祭堂)을 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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