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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 등대20090201

송계 2009. 2. 6. 13:10

 

 

팔미도 가는 배에서 만난 인천대교

 

 

정박중인 화물선과 안개낀 섬

 

 

팔미도 전견

 

 

팔미도 모래사장과 바위가 있는 해변

 

 

선착장에서 본 아름다운 바위산

해금강^^

 

팔미도 등대

앞에있는 등대가 최초의 등대

 

 

등대 홍보관 내부

 

 

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이

인천 상륙작전을 위해 북한군이 점령한 팔미도 등대를

탈환하여 등대불을 밝혀 상륙작전용 군함들이 차질없게

등대불을 보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명령^^

등대 불을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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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팔미도의 등대가 처음 불을 밝힌 것은 1903년 6월 1일이다.

높이 7.9m, 지름 2m 크기의 이 등대는 우리라라에서 처음 세워진 국내 등대의 효시(曉矢)이다.

인천항이 개항할 때 우리 정부가 일본과 맺은 통산장정(通商章程)에 따라 구한말 탁지부 산하에 해관등대국(海關燈臺局)을 설치하고, 1902년에 등대를 세우기 시작해, 이듬해 6월에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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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의 현장 팔미도

1904년 2월 9일 오전 10시 일본의 최후통첩을 받은 러시아 함대는 교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고 팔미도 근해에서 치열한 해전을 전개하였다. 약 40분간의 포격전 끝에 열세에 놓인 러시아의 "바리야크함"과 "코레츠함"은 자폭을 결심하게된다.

1993년 이후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매년 인천해역 방어사령부를 방문하여 해상 위령제를 지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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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인 팔미도

팔미도는 6.25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 성공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인천 상륙의 길잡이가 되는 팔미도 등대의 탈환은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는 상륙작전의 시발점이었다. 이에 1950년 9월 14일 밤 최규봉 KLO 대장이 이끄는 한미 연합사 특공대가 팔미도 등대 탈환에 성공, 등대 불을 밝힘으로써 10만의 연합군 병력과 261척의 함선이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역사적 성공을 알리는 기념비가 1999년 9월 14일 해군 2함대사령부의 지원을 받아 KLO 기념사업으로 이 곳 팔미도이 세워졌다.

 

팔미도 관광 코스

선착장 - 천년의 광장 - 야외문화공간 -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 - 최첨단 등대&전시관 - 산책로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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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미도 행 유람선 032-882-5555

팔미도 입도시 

대인 25,000원 소인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