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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북한산 둘레길20101027

송계 2010. 10. 29. 21:14

 10시정각 7호선 도봉산역 만남의 광장에서 모인 북한산둘레길 탐방객 28명이

도봉사를 지나, 간이화장실 아래왼편으로 들머리를 잡았다.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둘레길 수유분소까지 둘레길 걷기

도봉산 방학동구간은 아직 둘레길이 완성되지 않아 지도에도 표시되지않은 곳이다.

 

 여물지않아 베다만 벼논도 지나

 

무수골 공원지킴터를 지나서

 

 

오솔길 갈래가 많아 내려간곳 萬成寺큰법당을 지나 안방학으로 내려갔다가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50호 / 시대 : 15세기 후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 1호

 

이 묘역은 양효공(良孝公) 안맹담(安孟聃: 1415~1462)과 그의 부인 정의공주(貞懿公主: ?~1477)를 합장한 곳이다. 이 묘역의 봉분은 쌍분이고, 신도비, 묘표2기, 상석2기, 문인석2쌍, 3단계체석 등의 석물이 남아있다. 양효공의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함길도 도관찰출척사 안망지(安望之)의 아들이다. 1428년(세종10년)에 14세의 나이로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와 결혼하였는데 부부의 금슬이 좋았다고 전한다. 세종은 그에게 한강 가운데 있는 저자도(楮子島)와 낙천정(樂天亭)을 하사하였다. 그는 초서를 잘 써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고 음악과 의학에도 통달하였다. 묘역의 묘표2기는 쌍분 앞에 있어 정의공주가 왼쪽에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표의 관석에는 여의두문(如意頭紋)과 운문(雲紋)을 새겼는데 이는 조선 초기 일부 묘표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1466년(세조12년) 묘소 동남쪽 아래에 신도비를 세웠다. 정인지(鄭麟趾)가 비문을 지었고 안맹담의 4남인 안빈세(安貧世)가 비문과 전액의 글씨를 썼다. 비는 이수(이首), 비신(碑身), 귀부(龜趺)로 되어 있다.

 

세종대왕의 둘째 딸 정의공주와 부마 안맹담이 합장된 묘역

 

 

연산군 묘(燕山君 墓)

이곳은 조선왕조 제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1476~1506)과 왕비인 거창군부인 신씨(1472~1537)등이 안장된 묘역이다. 연산군은 성종의 큰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임금이 되었다. 젊은 임금이었지만 붓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지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 번씩이나 사화(士禍)를 일으켜 조정을 어지럽히자 신하들은 왕위를 박탈하여 연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화도로 추방 하였으며, 중종(中宗) 임금을 새로 추대하였다(1506). 그 해에 연산군은 병이들어 강화도에서 31세로 생을 마쳤는데 7년 후 부인 씬씨의 요청으로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1513). 묘의 시설은 왕자의 묘제에 따라 담장, 혼유석, 장명등, 문인석, 재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왕릉보다는 간소하나 조선시대 전기 능묘 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 있다. 묘역의 아래쪽에는 궁주 조씨 및 사위와 딸의 무덤이 있다.

  

연산군묘 아래 은행나무 보호수(보호수: 수령 약200년)도 보고

 

 

원당샘을 지나고

 

 

 

 우이동 도선사가는 길을 따라 갇다가 왼편으로 접어들어

 

 

 

 

 소나무 숲 근린공원에 있는 삼각산 탑

 

소나무 숲 분수대 도지나고

 

 

 수유리 4.19묘지도 지나고

 

북한산 둘레길 탐방센타에 도착하여 둘레길 하루 일정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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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출처 : 송계갤러리
글쓴이 : 송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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