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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태안 해변길 5코스 노을길2015-1-4

송계 2015. 1. 6. 14:27

 

 

 

 

 

 

 

 

 

 

 

 

 

 

 

 

두여해변은

지형이 아름답고 나무가 우거져 도인들이 도를 닦던 마을이라 하여 도여라 불렸습니다. 이 곳은 대규모 지각운동에 의해 지층이 큰 물결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형태의 습곡이 특이하게 해변을 따라 노출되어 있으며, 주변의 수려한 해안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학술적, 교육적 가치가 큰 장소입니다.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의정산우가 아니였나 봐여~

27세 청년

 

꽃지 촬영 포인트

 

햄미읍성(海美邑城)                                      사적 116호 해미읍성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2-2번지 일원

이성(城)은 고려말부터 많은 피해를 준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해미로 옮기기로 하면서 1417년(조선태종17년)부터 1421년(세종3년)까지 축성(築城), 충청도의 전군(全軍)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兵馬節都使營城)이다. 1652년(효종3년)까지 230여년간 병마절도사영(兵馬節都使營)의 기능을 하였으며,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이 성에 옮겨와 겸영장(兼營將)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호서좌영으로 1895년 행정구역 개편때까지 243년간 내포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했던 곳이다. 낮은 산(山)과 평지를 이용하여 쌓은 평산성(平山城)으로 성곽의 하단은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였는데 안쪽은 흙으로 채웠다. 성문은 동,서,남, 세 곳에만 있고 북에는 암문(暗門)이 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鎭南門)은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이다. 성밖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해자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으며, 기록에는 성벽위에 여장(女墻)과 옹성(壅城)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둘레는 1800m,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탱자의 한자음을 취한 지성(枳城)이라고도 한다. 이 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東軒)을 비롯한 관아(官衙)와 객사(客舍)등의 건물이 꽉 들어차 장관(壯觀)이었다고 한다. 1578년(선조11년)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진남문

 

 

죄인을 취조하던 곤장^^

충청도 할미의 해학스런 모습^^

 

 

2014-5-7 태안해변길 4구간에서(바람이 많이 불던날`!)

2014-5-7 태안해변갈 4구간에서

2014-5-7 태안해변길 4구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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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4(일)

의정산악회 정기산행

태안해변길 5코스 노을길에서

 

출처 : 송계갤러리
글쓴이 : 송계/(사)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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